르네상스 시대 이전, 사람들은 이미 창의성이 개인의 내재된 능력이나 재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가 창의적 능력을 간절히 원할 때 외부의 어떤 존재가 다가와 그런 능력을 발현시켜준다고 생각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로 유명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엘리자베스는 그리스인들이 창의성을 가져다 주는 이러한 외부의 존재를 신성한 혼이라는 뜻의 ‘디몬’으로 불렀고, 소크라테스는 디돈이 자기에게 지혜의 말을 해준다고 믿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디몬이 ‘사이’에서 나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으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으로 유명한 ‘문답법’은 사이를 통해 아이디어나 통찰력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문답법의 핵심은 질문의 정답을 알면서 묻고 답하는 형식이 아니라,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궁금증과 생각들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지식의 연결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있었다. 사람들은 열린 마음, 관용, 호기심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으므로 서로 자신이 찾고자 하는 대답에 관한 세렌디피티를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로마 사람들은 이러한 존재를 창의적인 혼을 지닌 요정 ‘지니어스’라고 불렀다. 집에 몰래 숨어 있던 지니어스 요정이 예술가가 일할 때 몰래 나와서 그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에게 지니어스의 혼이 깃들면 평소 역량을 훨씬 뛰어넘는 작품을 탄생시킬 수도 있게 된다. 당연히 당시에 창의적 활동을 하던 이들은 언제나 지니어스가 자신에게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고, 심지어 자신의 작품이 실패로 판명난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일부 지니어스의 탓으로 돌려 스스로에 대한 비난에서 한발 벗어날 수 있는 면죄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북아프리카의 사막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달빛 아래에 모여 종교 의식을 거행했는데 군무를 하는 댄서들이 어떤 순간에 이르면 마치 시간이 멈춘듯, 어떤 경지를 초월한 듯한 순간(Moment)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평소에도 수없이 그 춤을 추지만 어느 순간 더이상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게 된다. 자연과 우주, 사람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야말로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른다. 사람들은 그 순간 지니어스의 혼이 깃들었음을 인지하고 일제히 두 손을 모아 ‘알라 알라 알라’, 즉 ‘신이시여 신이시여 신이시여’라고 외친다. 이러한 풍습은 아프리카에 살던 무어족에 의해 남부 스페인이 점령되면서 퍼져나갔고 스페인 사람들은 이런 지니어스의 순간에 ‘올레 올레 올레’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올레! 라고 외칠 때는 ‘신이시여!’라고 외치며 감동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주보며 화이팅 하듯이 ‘올레’라고 말하는 순간은 진정으로 아름답다. 왜냐하면 이는 ‘당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신의 기운이 깃들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이며 진정으로 서로를 축복하는 뜻을 담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알라’와 ‘올레’라는 감탄사 역시 지니어스가 ‘사이’에서 나온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악마가 되어버린 창의성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과 영혼의 세상은 인간 중심의 세상으로 바뀌었고, 개인에게 흡수되어버렸다. 즉, 내가 곧 신이며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신앙과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신의 세상에 있던 많은 개념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 채 개인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니어스였다. 예전에는 ‘예술가에게 지니어스가 깃들었다(having genius)’라고 표현했던 것을 이제는 ‘그는 천재다(he as being genius)’라고 표현한다. 디몬과 지니어스는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도움을 주는 착한 요정이나 영혼이 아니라, 이제 개인의 재능이 되어버린 것이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이것은 마치 ‘하나의 연약한 인간에 불과한 예술가에게 태양을 삼켜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개인의 안으로 들어간 재능은 곧 과부하를 낳게 되었고, 예술가들은 스스로 지니어스임을 증명하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예술가는 단명한다’라는 선입견까지 생겼을 정도로, 예술가들은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신르네상스로 불리는 근대 테크놀로지 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였다. 예술 영역에 국한되던 창의성은 어느새 모든 이들에게 요구되는 삶의 기본 명제가 되어버렸다. 스크린의 발달과 소통 기술의 발달,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재능이 있다는 계몽적인 믿음은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는 혁신을 거듭하면서 직원들에게 ‘창의성’을 주문했고, 교육 역시 ‘전인교육’ 대신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무한경쟁을 시작했다. 이제 누구나 자신에게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지니어스가 있어야만 한다고 느꼈다. 남들만큼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하나쯤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음을 비우고 그저 즐겨야 할 대상에까지 적용되었다. 노래를 잘하거나,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 등, 사람들을 만났을 때 자기 자신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재능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개인화가 심화될 수록 사람은 조직속에 담아두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벗어내고 솔직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나기 시작했고 이제 물리적으로 인접한 공간에서만의 인간관계가 아니라 관심사나 호기심,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는 전 세계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대로 발전했는데도, 정작 사람들은 재능이라는 저주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 스스로를 걸어 잠그게 되었다. 개성이 넘치고 자유분방할 것 같은 오늘날의 사람들은 오히려 함께 있으면서도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자신이 쿨한(I’m cool) 사람이라고 애써 되뇌인다. 그러나 타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거리를 두며 쿨하다고 느껴지는 이러한 무심한 감정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가식적인 기준이다. 르네상스를 맞으면서 인류는 ‘신’을 죽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지니어스를 죽여버린 것이다. 디먼(daemon)을 진정 악마(demon)로서 취급하며 죽여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뛰어넘는 생각들은 우리 사이에서 존재함을, 다양한 관점들과 아이디어들이 어우러지는 세렌디피티의 장에서 더욱 창발함을.

당신에게 신의 기운이 깃들기를… 올레!

이 글은 ‘창조력 주식회사’ 에 담긴 글의 일부입니다.

 

inhyuk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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